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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천왕봉
해발고도 1,915m이다. 남한에서 지리산(1,950m) 다음으로 높다. 거대한 암괴(岩塊)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서쪽 암벽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천주'라는 음각 글자가 있다. 정상에는 1982년에 경상남도가 세운 높이 1.5m의 표지석이 서 있다. 함양 방면으로는 칠선계곡을 이루고, 산청 방면으로는 통신골·천왕골(상봉골)을 이루어 중산리계곡으로 이어진다.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은 항상 구름에 싸여 있어 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이 곳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전해 올 정도이며, 지리산 8경 가운데 제1경이 천왕일출일 만큼 해돋이가 아름답다. 정상에 1칸 크기의 돌담벽이 있고, 그 안의 너와집 사당에 성모상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빨치산에 의해 파손된 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정상 아래에는 큰 바위 틈새에서 샘물이 솟아나오는 천왕샘이 있다.
정상에 오르려면 동쪽으로 개천문(개선문), 남서쪽으로 통천문을 거쳐야 하며, 이 외에 칠선계곡을 지나는 날카로운 비탈길과 대원사에서 중봉을 거쳐 오르는 험난한 길 등이 있다. 법계사를 지난 뒤에 나오는 개천문은 '하늘을 여는 문'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통천문은 '하늘을 오르는 문'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이다. 통천문은 천연 암굴로 사다리를 타야 지날 수 있는데,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고 선인(신선)들도 반드시 이 곳을 통과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지리산뱀사골
돌돌골이라고도 한다.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伴仙)까지 산의 북사면을 흘러내리는 길이 14km의 골짜기를 말한다. 지리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여러 골짜기들 가운데서 가장 계곡미가 뛰어난 골짜기의 하나로 꼽힌다. 전구간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이 계곡에는 100여 명의 인원이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넓은 너럭바위가 곳곳에 있고, 100여 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줄을 잇는다.
봄철에는 철쭉꽃이 계곡을 메우고, 가을철에는 빛깔이 다양한 단풍이 계곡을 덮으며, 또 여름철에는 녹음 짙은 계곡 안에 삼복더위를 얼어붙게 하는 냉기가 감돈다. 뱀사골이라는 이름은 골짜기가 뱀처럼 심하게 곡류하는 데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한다.
지리산노고단
노고단(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꼽힙니다.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며 북쪽으로 심원계곡을, 남쪽으로 화엄사 계곡과 문수 계곡, 피아골 계곡에 물을 보태는 크나큰 봉우리입니다. 이 곳은 신라시대 시조 박혁거세의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서 모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사는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사당인 남악사(南岳祠)를 세워 올렸는데 지금은 화엄사 앞으로 옮겨 구례 군민들이 해마다 곡우절을 기해 산신제를 올리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노고단은 고산지대로 노고단에서 내려다보이는 섬진강과 운해, 봄의 철쭉, 여름의 원추리,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화 등 철따라 변하는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루고 주위에는 종석대, 관음대, 집선대, 문수대, 청연대, 만복대 등 명승지가 둘러 서 있습니다. 그리고 성삼재를 넘는 관광도로가 열린 후 한층 가까워진 노고단은‘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며 고산 휴양지의 메카로 떠올랐습니다.
지리산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3개도인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경상남도와 5개시군인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과 16개읍.면 및 80여개의 마을을 잇는 300여km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2011년까지 각종 자원조사와 정비를 통해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환형으로 연결하고 있다.
1구간
○ 산동 - 주천 구간 *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원촌리 원촌마을과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을 잇는 1.5km의 지리산 둘레길 산동-주천 구간은 옛 19번 국도가 지나면서 전남과 전북을 잇던 구간으로, 지리산 둘레길 통합개통이 이루어진 밤재를 넘는다. 지리산 노고단과 만복대를 조망하며 걷다가 견두산 아래 편백나무 숲에서 상쾌한 피톤치드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계척마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할머니 산수유 나무를 만나고, 특히 이른 봄 현천마을에 이르면 돌담길 따라 산수유 군락이 장관을 이룬다. 산동면 소재지인 원촌마을에서 오전에만 열리는 산동 5일장(2, 7일)을 만난다면 시골장의 정취를 느낄 수도 있다.
2구간
○ 방광 - 산동 구간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방광마을과 구례군 산동면 원촌리 원촌마을을 잇는 13.2㎞의 지리산둘레길 방광 - 산동 구간은 지리산국립공원을 이웃하며 걷는 임도와 마을을 잇는 옛길로 되어 있다. 진시왕의 명을 받은 서불이 와서 불로장생약을 찾았다는 지초봉 옆의 구리재에 올라서면 구례분지의 넓은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초봉 일대는 구례 수목원과 국내최대의 생태숲이 조성 중이어서 다양한 숲자원을 만나게 될 예정이다. 당동 예술인 마을을 돌아가다 보면 조선시대 지리산 산신을 모시던 남악사터와 미륵골이라 불리는 골짜기 안 대전리 석물입상을 만나게 된다. 방광마을에서 천은사를 거쳐 성삼재까지 일주도로를 이용해 노고단도 들러볼 수 있고, 산동에서는 지리산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3구간
○ 오미 - 방광 구간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방광마을과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마마을을 잇는 12.0㎞의 지리산둘레길 오미 - 방광구간은 전통마을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구간 중 하나이다. 구례분지를 조망하며 농로와 숲길을 주로 걷는 아기자기함이 재미있다. 화엄사 아래 지리산 탐방안내소에서는 지리산의 자원과 역사를 살피고, 종 복원센터에 들러 반달가슴곰도 만날 수 있다. 상사, 하사마을은 승려 도선국사가 풍수지리를 터득한 곳으로 당몰샘과 쌍산재가 있으며, 토지면 오미마을은 최고의 명당인 운조루와 곡전재 등 고택의 정취, 효와 장수의 고장다운 인정을 느낄 수 있다.
4구간
○ 오미 - 난동 구간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과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난동마을을 잇는 18.7㎞의 지리산둘레길 오미 - 난동구간은 서시천과 섬진강을 따라 걷는 길로 봄이면 벚꽃과 복사꽃이, 여름이면 원추리꽃이 장관을 이룬다. 광의면 구만마을에는 우리밀 체험장이 있고,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곳 중 하나인 용두마을에는 일제시대 울분과 저항의 흔적인 용호정이 있고, 섬진강 일대는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수달이 서식하고 있다. 강바람 따라 제방길을 걷다보면 지리산과 인근 들녘이 어우러지는 조 망 속에 구례 5일장(3, 8일)과 지리산둘레길 구례센터를 만나게 된다.
5구간
○ 송정 - 오미 구간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마을과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을 잇는 10.5㎞의 지리산둘레길 숲길과 마을길을 번갈아 걷다보면 오래된 미래, 지속가능한 지리산의 모습을 떠올리가 되는 구간이다. 6㎞에 이루는 숲길은 그 어느 곳보다 잘 보존된 숲과 최근의 산불로 다시 새로운 생명을 틔우고 있는 모습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유재란 당시 수많은 의병과 승병들이 후방도, 지원도 없이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석주관성 지역과 옛 산골 마을의 흔적인 묵답과 숯가마터도 만날 수 있다. 파도리와 문수골을 지나면서 만나는 섬진강과 구례분지의 풍광 이면에 농촌, 농업을 지켜가는 농민들의 노고와 운조루 같은 역사문화 자산을 소중히 여기는 주민들의 소중한 마음이 녹아있다.
6구간
○ 가탄 - 송정 구간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가탄마을과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마을을 잇는 10.5㎞의 지리산둘레길 재를 두 개 넘으며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잇고, 싶숙한 숲 길 사이 섬진강 청류 굽이굽이 내려보며 걷는 구간이다. 작은재와 목아재 사이에 연곡골 기촌마을을 제외하면 중간에 인적을 만나기 힘들 정도로 조용하고 경사도가 심한 관계로 미리 준비를 단단히 하고 출발해야 한다. 목아재는 예전에 골짜기 위 아래 사람들이 만나 물물교환을 했던 곳이며, 피아골 송정마을 안한수내 골짜기는 여순사건, 한국전쟁 당시 대립과정에서 많은 희생과 고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한다.
7구간
○ 목아재 - 당재 구간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목아재와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당재를 잇는 8.1㎞의 지리산 둘레길 연곡천, 피아골을 둘러싼 능선을 넘으며 천년고찰 연곡사와 척박한 골짜기 마을의 질긴 삶을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 농사짓기 쉽지 않아 구황작물인 피를 재배했다고 해서 피밭, 피아골이 되었다 하나, 장엄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계곡은 단풍의 유명세와 더불어 우리나라 대표적인 관광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지리산 왕시루봉에서 연곡골로 흘러내린 능선에 목아재가 있고, 반야봉에서 산도봉을 거쳐 통꼭봉, 황장산으로 흐르는 불무장등에 당재가 있다. 당재를 넘으면 하동의 화개골을 만나고, 하동과 구례의 경계선인 황장산 등산로로 가면 다시 가탄 - 송정 구간의 작은재를 만나게 된다.
한신계곡
깊고 넓은 계곡 또는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으로, 계곡의 물이 차고 험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산하다고 해서 부르던 이름이 한신이 되었다고도 하고, 옛날에 한신이라는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백무동에서 세석고원까지 여러 개의 폭포를 이루면서 10㎞에 걸쳐 흐른다. 백무동 위에서 세석까지 흐르는 본류 외에도 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과 칠선봉 부근에서 내려오는 곧은재골, 장터목 방향에서 흐르는 한신지계곡 등 4갈래의 물줄기가 엄천으로 흘러 남강 상류를 이룬다. 본류는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협곡을 흘러 가네소폭포에서 한신지계곡과 합류한다. 지리산 계곡 가운데 폭포를 가장 많이 끼고 있으며, 지리산 등반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계곡과 절벽 사이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2㎞ 정도 오르면 20여 개의 물줄기가 흐르는 첫나들이폭포(바람폭포)가 나오고, 다시 1㎞를 더 가면 폭포수와 넓은 반석, 울창한 수풀이 어우러져 계곡의 절정을 이루는 가네소폭포가 나온다. 15m 높이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며, 사철 변함없는 수량을 자랑하는 검푸른 소(沼)를 만들어 기우제 장소로도 유명하다. 가네소폭포 아래부터 본류까지 오층폭포와 한신폭포를 따라 세석으로 흐르고, 내림폭포를 따라 장터목으로 이어지는 한신지계곡이 흐른다.

가네소폭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폭포가 5층으로 이어지는 오층폭포 또는 오련폭포가 나오고, 다시 계곡을 건너 등반로를 따라가다 보면 계곡의 상징인 한신폭포가 나오는데, 여기서 1㎞를 더 가면 세석고원이다. 주변에 벽송사·서암·실상사·뱀사골 등 유적지와 관광지가 많다. 찾아가려면 함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백무동행 버스를 타면 되고, 승용차로 가려면 88올림픽고속도로를 타고 함양인터체인지로 나와 좌회전한 뒤 수동검문소 못미친 지점에서 우회전하여 25분 정도 직진하면 계곡 입구가 나온다.
칠선계곡
칠선계곡(추성계곡), 지리산 최대의 계곡미를 자랑하며 갖가지 형용사들이 동원돼 표현된다.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손꼽힌다.
지리산의 대표적인 계곡으로 험난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 그리고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끼고 있는 칠선계곡(추성계곡)은 천왕봉 정상에서 마천면 의탄까지 장장 18km에 걸쳐 7개의 폭포수와 33개소의 소가 펼쳐지는 대자원의 파노라마가 연출된다.
지리산자락 가운데 유독 여성을 상징하는 지명이 가장 많으면서도 들어가면 갈수록 골이 더욱 깊고 날카로운 칠선계곡(추성계곡)은 그 험준함으로 인해 숱한 생명을 앗아가기도해 죽음의 골짜기로도 불릴 정도이다. 그래서 지리산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칠선계곡(추성계곡)을 꼭 등반하고 싶어 하지만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특히 전문 산악인들도 히말라야등 원정등반에 앞서 겨울철 칠선계곡(추성계곡)에서의 빙폭훈련 등반을 거칠 정도로 겨울의 칠선은 고난도의 등반 기술을 요구한다.
일반인들의 경우 칠선계곡(추성계곡)을 등반할 경우 여름철에도 계곡 아래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루트는 피하고 주로 다른 코스로 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 길로 칠선계곡(추성계곡)을 택한다. 칠선계곡(추성계곡)의 총 연장은 18km이지만 등반코스는 추성동에서부터 천왕봉까지 14km이다.

지난해 까지만 해도 버스편이 마을까지 밖에 연결이 안됐지만 지금은 한시간 간격으로 추성동-함양읍간을 운행하는 버스편이 있어 등산로가 4km가 줄어든 셈이다.

추성동에서 시작되는 칠선계곡(추성계곡) 등반로는 계곡등반의 위험성 때문에 상당 구간이 계곡과 동떨어져 있다. 이는 등산로를 벗어나서는 마음 놓고 발길을 둘 곳이 없을 정도의 험난한 산세 때문이다.

추성동에서 등산로를 따라 곧장 가면 칠선계곡(추성계곡)에서 처음 만나게되는 용소를 놓치기 쉽다. 등산로에 용소가는 길을 표기해 놓았으나 등산로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계곡으로 거슬러 가면 5백여m 지점에 위치한 용소는 산신제를 지낼때 산돼지를 집어 넣는 곳으로 전해진다.

계곡을 따라 2km남짓 오르면 두지동(두지터라고도 함)이 나오는데 등산로는 계곡길과 떨어져 별도로 나있다. 주로 등산로를 이용하고 있는데 두지동은 마을 모양이 식량을 담는 두지같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옛날 화전민들이 기거하던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담배건조장과 농막등만 남아 이 마을이 등산객들의 휴게소로 각광받고 있는데 담배 건조장이 분위기 있는 찻집으로 변해있어 눈길을 끈다.

두지동에서는 창암산 능선을 넘어 백무동으로 갈수도 있다. 한동안 계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등산로를 따라 가다보면 암반과 소가 어우러진 곳에 설치된 쇠다리를 만날 수 있다. 여기서 경사진 도로를 따라 힘겹게 오르다보면 잡초와 감나무, 호도나무가 어지럽게 뒤덮인 마을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곳이 옛 칠선동 마을 터로 한때 독가촌이 산재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울창한 잡목 숲을 따라 조금 더 가면 계곡 물 소리는 아득한 발 아래서 들릴듯 말듯 하며 널따란 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여기가 전망좋은 쉼터인 추성 망바위이다. 여기서부터는 계곡등반은 전혀 상상도 못 할 정도의 험난한 산길이 추성동에서 4km 지점인 선녀탕까지 계속된다.

일곱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 지금은 돌과 모래등으로 메워져 전설속의 선녀가 목욕했을 정도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초라하다.
선녀탕의 전설은 선녀에게 연정을 품은 곰과 선녀를 도운 사향 노루가 등장하는 동화같은 얘기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일곱 선녀가 이 곳에서 목욕하는 것을 본 곰이 선녀들이 하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옷을 훔쳐 바위 틈에 숨겨 버렸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맬때 사향 노루가 자기 뿔에 걸려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 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곰이 바위 틈에 누워있던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 알고 선녀들의 옷을 숨겼던 것이다. 그 후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 노루를 칠선계곡(추성계곡)으로 이주시켜 살게 했으며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아 버렸다는 전설이다.

선녀탕에서 조금 지나면 1백여평 남짓한 소와 매끈한 암반이 있는데 칠선계곡(추성계곡)에서 가장 빼어난 옥녀탕이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울창한 수림과 넓은 소가 연출해 내는 옥녀탕의 전경은 위로 무명 소들과 이어져 깎아지른듯한 벼랑으로 연결되면서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벼랑으로 조심스럽게 오르다 보면 비선담이 색다른 모습으로 반긴다. 계곡등반의 묘미를 한껏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비선담을 지나면 옛 목기막터가 있었다는 산죽밭을 지나 오른편 계곡으로 건너게 되는데 계 곡주변에 조그마한 바위굴이 있다.

과거 목기를 만들던 인부들이 지내던 곳으로 청춘홀이라 불리고 있다. 이는 칠선계곡(추성계곡)이 개방된 이후 청춘남녀들이 한데 모여 굴속에서 지냈다는 뜻으로 청춘홀이란 이름이 등장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등산로에는 별도의 안내판이 없어 지나치기 쉽지만 계곡 암벽에 페인트로 '청춘홀'이라 씌어 있다. 청춘홀에서부터 등산로는 점차 경사를 더해 험난해지는데 여기서부터 칠선계곡(추성계곡)의 진미를 더하는 폭포수를 볼 수 있다. 칠선계곡(추성계곡)을 상징하는 칠선폭포가 쏟아내는 물줄기는 가히 절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칠선폭포의 위용 못지 않은 대륙폭포, 3층폭포등의 시원한 물줄기와 험난한 등산로는 천왕봉과 중봉, 하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만나는 합수골까지 계속된다. 이 일대에는 3개의 폭포수가 묻혀있어 폭포수골이라고도 불린다.

합수골 일대에는 옛날 도벌꾼들의 초막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야영할 공간이 많이 있다. 합수골 일원의 비경을 뒤로 한채 돌투성이 길을 따라 힘겹게 오르면 계곡미라고는 거의 볼 수 없는 구간이 계속된다.

울창한 수림을 따라가다 보면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물줄기 두갈래가 마주치는 마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천왕봉까지의 수직 고도차 5백여m, 거리는 3km구간인 마폭포. 천왕봉과 중봉사이의 물줄기와 통천문아래의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원한 두 갈래의 물줄기를 마지막으로 등산로는 천왕봉까지 이어진다. 더이상 계곡은 커녕 물한모금 찾을 수 없는 등산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천왕봉까지의 3km구간은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지대로 색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전나무, 잣나무는 물론 희귀수목이 어우러져 음침한 숲속 분위기를 자아내며 숲속에서는 온갖 고산식물의 향긋한 내음이 코를 찌르고 바위와 나뭇가지에는 이끼가 두꺼워 인상적이다.

경사 60-70도의 바위길과 길을 가로막고 쓰러진 고목사이를 지나노라면 지리산 등산의 진미를 느끼는 듯 하다. 하늘을 향하듯 급경사 길을 따라오르다 보면 어느 사이 거목들은 사라지고 철쭉나무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천왕봉이 그 모습을 보여준다.

칠선계곡(추성계곡)의 험준함과 아름다움을 체험하면서 천왕봉에 도달하면 다시금 하늘이 울어도 아니 우는 천왕봉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천왕봉의 위대함을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등반로가 있다면 바로 칠선계곡(추성계곡)코스라고 할 수 있다
정령치
구례에서 861번 지방도를 따라 성삼재를 넘고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부르는 심원부락 입구를 지날 때도 여전히 전라남도 구례군이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도 경계가 나오고 그 즈음에 737번 지방도와의 분기점이 나타난다. 여기서 계속 861번 도로를 따라 가면, 달궁, 뱀사골 입구, 산내로 가고, 마천과 인월은 산내에서 갈라진다. 한편 분기점에서 왼편으로 737번 지방도를 따라 급경사를 오르면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의 경계이며, 백두대간을 횡단하는 고개인 정령치에 이른다. 정령치의 높이는 예상 외로 1,172m나 된다.
화엄사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인도에서 온 연기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자장율사와 도선국사에 의한 중건 과정을 거치며 번성하다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인조 14년(1636년)에 중건되었다. 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화엄사라 명명되었으며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각황전과 세련된 조각이 아름다운 사사자 삼층석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기가 큰 각황전 앞 석등, 각황전 안의 영산회괘불탱 등 4점의 국보와 대웅전, 화엄석경, 동·서 오층석탑 등 4점의 보물을 비롯해 천연기념물 제1040호로 지정된 올벚나무까지, 빛나는 문화유산을 간직한 천 년 고찰이다.

가람의 배치가 영주의 부석사 만큼이나 독특한데 일주문을 지나 약 30° 꺾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 문수, 보현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 문은 금강문과는 서쪽 방향으로 빗겨 배치한 것이다.
이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에 이르고, 보제루는 다른 절에서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는 다르게 누의 옆을 돌아가게 되어 있는 구조다. 일출과 일몰 전의 지리산 자락을 울리는 타종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하동에서 화엄사에 이르는 길은 쌍계사 십리벚꽃길과 더불어 벚꽃으로 장관을 이루어 해마다 4월 중순이면 여행객이 끊이지 않는다
실상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데서 비롯된다. 선종(禪宗)이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 제36대 혜공왕(惠恭王) 때인데, 발전을 못하다가 도의(道義:道儀)와 함께 입당(入唐), 수학하고 귀국한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이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으뜸 사찰로 발전하였다.

도의는 장흥(長興) 가지산(迦智山)에 들어가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곳에 실상사를 세워 많은 제자를 배출, 전국에 포교하였는데 이들을 실상사파(實相寺派)라 불렀다.
그의 제자로 수철(秀澈) ·편운(片雲) 두 대사가 나와 더욱 이 종산(宗山)을 크게 번창시켰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어 약 200년 동안 승려들은 부속암자인 백장암(百丈庵)에서 기거하다가, 조선 제19대 숙종대에 이르러 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1882년(고종 19) 사찰 건물이 소실되는 수난을 겪고, 다시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중건되어 현재에 이른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 보물 제33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4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보물 제36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37호인 3층석탑 2기(基), 보물 제38호인 증각대사응료탑(凝寥塔), 보물 제39호인 증각대사응료탑비,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 보물 제41호인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 보물 제420호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1호인 약수암목조탱화(藥水庵木彫幀畵)가 있다.
벽송사
대한불교조계종 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예로부터 수행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하여 사적기(事蹟記)가 없어 창건연대 및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다만, 현 위치에서 50m 위의 옛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이 고려 초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므로, 이 절의 창건 역시 신라 말 내지 고려 초로 보고 있다.

1520년(중종 15)에는 벽송(碧松)이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으며, 6·25 때 소실된 뒤 곧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전(普光殿)을 중앙으로 좌우에 방장선원(方丈禪院)과 간월루(看月樓)가 있으며, 전면에는 산문(山門)과 종루를 배치하였고, 후면에는 산신각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74호인 벽송사삼층석탑 1기가 있다.
전래되는 설화로는 승려 서룡(瑞龍)의 이야기가 있다. 만년에 이 절에 머물렀던 서룡은 1890년(고종 27) 12월 27일에 문도를 불러서 입적할 것을 고하였으나, 제자들은 그믐의 바쁜 일이 끝나거든 입적할 것을 청하였다.
정월 초이튿날 다시 입적하려고 하자 제자들은 불공하러 오는 신도들이 많다는 이유로 다시 며칠을 미루도록 하였다. 4일에는 “이제 가도 되겠느냐?”고 물은 뒤 제자들을 불러 “불법을 닦을 때 생사를 해탈하려면, 먼저 생사가 없는 이치를 알아야 하고(知無生死), 둘째 생사가 없는 이치를 증득하여야 하며(證無生死), 셋째 생사가 없는 것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用無生死).”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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